천사를 본 사람들은

먼저

실망부터 해야 한다.

 

천사는 바보다.

구름보다 무겁고,

내 집게손가락의 굳은살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천사는 바보이고

천사는 있다.

 

천사가 있다고 믿는

나는

천사가 비천사적인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를 떠올린다.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 천사.

허우적거리다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진흙에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그 난처한 아름다움.

 

아니면

야간 비행 실수로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불시착한 천사

 

가까스로 매달린 채

엉덩이를 내보이며

날개를 추스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면

비둘기 똥 가득한

중세의 첨탑 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망연자실.

 

내가 원하는 천사다.

 

/허연, 내가 원하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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