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축축한 흙 위에 놓인 흰 발 두 쌍은 어딘가 이질적으로 보였다. 흙투성이인 숲의 발과는 다르게, 녹색의 수초가 족쇄처럼 감긴 자신의 발에는 드문드문 푸르스름한 이끼가 끼어 있었다. (p.60)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들은 깔끔하게 자취를 감추었다. 회색빛 세상이 환해졌고, 황량해진 숲과 물가에 일렁이는 담배꽁초마저 아름답게 느껴졌다. (p.68)

 

 흙과 비는 끝없이 쏟아졌다. 그것은 마을을, 하천을, 소나무 숲을, 물과 숲의 세상을, 물과 숲의 울타리를 모조리 뒤덮었다. 나무는 하천으로 구르고 하천은 마을을 침범했다. 지붕이 가라앉고 벽과 바닥에 붙어 있던 집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물은 세상이 뒤집히는 걸 보았다. (p.72)

 

 우리는 눈을 마주하고 어색하게 웃은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의 이름은 찬호가 아니라 찬석이었다. 그는 그래도 한 글자는 맞히지 않았냐며 웃었고 나는 그 웃음에 심장이 두근댔다. 나도 내 이름은 세영이 아니라 영희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자기도 한 글자를 맞혔다고 좋아했다. 심장이 더 두근거렸다. (p.122)

 

 나는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마신 다음 날 아침에 소식을 듣고 그의 시체를 확인했다. ··· 구역질을 하는 나를 보고 동행한 경찰이 "아가씨 비위가 약하네, 전날 술 마셔서 그래."라고 말했다. (p.139)

 

 나는 그냥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침 식사로 어머니가 차려주신 순두부찌개와 달걀말이, 그리고 참나물을 먹고 후식인 과일을 집어 먹고 있었다. 사과와 감이었는데, 사과는 시간이 지나서 갈변되었고 단감은 그리 달지 않고 약간 텁텁했다. 단감이면 달아야 되는 거 아닌가. 왜 단감이 달지 않고 떫지. 소파에서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버지 역시 단감이 아닌 떫은 감을 집어 먹으며 신문을 보고 계셨다. (p.143)